무지개타고
걸어서 진부에서 대관령 넘어 강릉까지 본문
여긴 이제야 아카시아 꽃이 만개했네~
라고 생각하며, 진부역에서 횡계를 향해 걷기 시작하는데
마주 지나친 아저씨가 갑자기 뒤돌아 묻는다.
"오대산 가세요?"
"아니요, 강릉까지 걸어가요."
그랬더니 좀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다.
오늘 예상 이동 거리는 약 40km.
숫자를 글로 바꾸면
많이 많이 매우 많이 걸어야 한다
정도 랄까.
강릉행 첫 차를 타러 청량리역으로 가는데
모처럼 지하 통로가 아닌 지상으로 걸어봤다.
어릴 적 대성리, 청평으로 MT 가던 때와 비교하면
청량리역 주변이 정말 몰라보게 변했구나.
진부역에서 횡계를 향해 걷는데 쉴 자리가 마땅치 않던 차에 나타난 정자.
그래 이런 자리에서 쉬어야 제 맛이지~
여기서 가져간 캔커피와 꿀맛 같은 맛동산을 먹으며 휴식을 즐겼다.
유천리 정자까지 걸으며 전과 다르게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금연 7년 기념으로 2년 전에 대관령, 선자령 갔을 때 GPX기록에 따르면
대관령이 해발 800m 대이기 때문에
앞으로 길은 계속 오르막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떠올랐다.
그리고 본격적인 오르막의 시작 유천2교차로.
멀리 고개가 보이는데 저 고개가 내가 예상한 그 고개가 아니었다.
다 올라왔나 싶으면 고개가 또 나타나고 또 나타나고 또 나타나고...
그렇게 속고 속아 싸리재 고개까지 5km, 고도차는 200m, 걸어서 1시간이 소요됐다.
횡계에서 떠돌이에게나 어울리는 맛없는 김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부푼 기대를 안고 대관령을 향해 걷는다.
대관령은 신년일출, 눈 산행, 금연 7년 기념하러 세 번 와봤어도
지금처럼 걸어서 대관령에 오기는 처음이다.
횡계에서 한 시간, 5km 정도 이동하니 대관령에 올라섰다.
먼저 얘기하면 290km를 걸어서 마주한 강릉 동해바다보다
대관령을 걸어서 오른 것이 더 기억에 남는다.
평창 봉평을 걸을 때도 느꼈지만
이 동네 봉평, 진부, 대관령, 강릉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 소나무 급이 다르다.
소나무가 굵직굵직하고 곧고 높고,
나무 생김새가 정말 늠름하다.
대관령을 걸어 올라온 기쁨을 마음 것 누리고,
대관령 옛길을 거쳐 이제 강릉 시내를 향해서 간다.
2년 전 옛길을 내려올 때도 그랬지만
저 너머에 호랑이가 웅크리고 앉아 나를 노려보고 있을 법한...
이 길 정말 무섭다.
그렇지만 무서워도 갈 건 가야지.
강릉까지는 아직 멀기에, 2년 전에 지나친 게 아쉬웠던 그 쉼터에서
발에 물집 방지용으로 붙인 종이반찬고를 새롭게 정비하며 숨 좀 돌린다.
대관령 옛길을 내려오다 보면 다리가 하나 있는데
이 다리부터는 원시림을 벗어난다.
즉 좀 더 편한 길이 나타난다.
대관령에서부터 내리꽂듯이 8km, 2시간 20분, 고도차 680m 가량을 내려와
대관령박물관에서 뒤돌아 본 대관령엔 구름이 잔뜩 꼈다.
비 예보가 있긴 했는데 한 시간가량 일찍 비 예보로 바뀐 상황.
불이 나게 걸었지만 좀 있자 내리기 시작하는 비.
다행히 비 구름이 나를 앞질렀기에 40분 정도만 비를 맞으며 걸었다.
그리고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강릉.
하루에 제무시를 두 대나 보다니.
당일치기로 구간 찍고 상경하던 전과 다르게 이번에는 강릉에서 하루 묵을 작정이었기에
강릉버스터미널과 강릉역 중간 정도 모텔로 낙점.
시간은 늦었지만 해변까지 10km 정도 더 걸으면 갈 수 있긴 한데
많이 걸었다...
돈가스가 먹고 싶어 예약한 모텔 주변을 검색해 찾아간 식당은 폐업.
돈가스를 포기해야 하나?
좀 떨어진 식당에서 기어코 먹고만 돈가스~
들어갈 땐 배고픔과 두 팀 밖에 없어서 그 생각을 못 했는데
계속 젊은 손님들이 들어온다.
괜스레 잘 못 온 것 같은 기분이다.
밥 먹으며 알게 됐는데 여긴 강릉 대학로, 어쩐지.
여기서 조금만 가면 유명한 중앙시장과 월화거리가 나온단다.
힘든데 가? 말아?
강릉 야경 이럴 때 한 번 보지 언제 보겠나 싶어 갔는데
보슬보슬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공연 팀을 뒤로하고 냉큼 뒤돌아서 모텔 앞으로.
좀 쉬자.
내일 강릉 동해바다를 맞이해야 하니~
그러나 새벽 1시 넘어까지 뒤적뒤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