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타고
걸어서 동해 강릉항에 서다 본문
강릉항을 향해 서울 상계동에서 시작된 걷기의 마지막 날.
누구나 각자 나름의 환상을 갖고 있을 텐데
난 강릉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화창한 날이 내 환상을 더 황홀하게 만들어 주는 오늘이다.
아침은 근처에 있는 별점 많은 김밥집에서 해결하려고 했는데
매장 내 식사는 안 된다고...
그래서 옆 편의점에서 간단히 샌드위치로 해결하고
강릉 구 도심을 가로질러 동해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내가 갖고 있는 강릉에 대한 환상 중 하나는 도농복합도시 다운 논밭이다.
도시 주위에 논밭이 있다는 자체가 내 관심을 끈다.
그래서 일부러 약 1.5km 가량 이어지는 뻥 뚫린 농로를 따라 걷는데
날씨마저 화창하니 나는 양탄자를 탄 듯 기분이 들뜬다.
조그만 주택가를 지나고 솔숲을 또 지나 송정해변을 향한다.
방풍림으로 조성된 솔숲에는 산책하는 사람이 제법 있었는데
휴일이었다면 해변은 관광객들로 북적였겠지?
솔숲을 따라 안목해변을 지나 강릉항을 향해 또 걷는다.
안목해변에는 커피 가게가 정말 많았지만
내 관심은 강릉항 끄트머리에 있는 붉은 등대.
강릉항을 둘러싸고 길게 이어진 방파제.
신년 일출 때라면 해맞이 인파가 장관이지 않을까?
방파제 위를 걷는데 바람에 몸이 휘청휘청 한다.
한 손으로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모자챙을 꼭 잡고 걷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한 겨울에 방파제 위에서 바람맞을 거 생각하니...
많이 춥겠군.
붉은 등대.
왠지 모르지만 등대는 붉은색이 잘 어울린다.
이렇게 서울 상계동에서 시작한 걷기의 대장정은 290km 떨어진 강릉항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이런 생각도 짧게 지나치고, 다시 강릉 중앙시장을 향해 버스 정류장으로 이동.
어제도 먹었지만 중앙시장 근처에 별점 많은 다른 돈가스 가게도 들를 겸,
그리고 점심을 먹고 강릉터미널까지 걸어가며 겸사겸사 강릉 골목골목 구경도 해야지~
이때 강릉에 갖고 있는 내 환상의 20%가 깨져버리는데
전투기... 소음...
강릉 아래에 공군 기지가 있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나주에서 만큼의 소음은 아니었지만 전투기 소음이 계속 이어지니
강릉에 대한 환상의 20%는 사라져 버렸다.
사실 난 코흘리개 시절 외갓집이 있던 운산동에서 몇달을 지낸 어렴풋한 추억이 있고,
이전부터 강릉에 대한 내 환상은 애초에 100%가 아닌 90%였다.
그 10%는 강릉도 눈 무지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는 것 때문.
예전에 선자령 일출산행 후 강릉에 오니 시내 도로가 눈밭인 것을 직접 봤기도 했고,
강릉 사는 사촌 매형도 말하길 겨울엔 차 트렁크에 눈삽을 넣고 다닐 정도라 하니.
그렇게 90%에서 20%를 제하니 강릉에 대한 내 환상은 이제 70%가 남았다.
더 빠질 일 있을까?
그나저나 걸어보니 다른 지방도시처럼 강릉도
인구 감소, 지방 소멸, 구 도심 쇠퇴 바람은 피하진 못 할 듯...
아무튼...
11 구간으로 나눠 걸은 강릉을 향해 걷기는 이렇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