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타고

산티아고는 멀잖아~~ 그래서 다녀온 운탄고도 100리 길 종주 본문

Personal

산티아고는 멀잖아~~ 그래서 다녀온 운탄고도 100리 길 종주

OnRainbow 2019. 9. 16. 14:07

지난봄 정선 운탄고도 종주에 도전했었다.

그때는 아쉽게도 만항재~도롱이 쉼터 구간만 밟고 중도에 하산하게 돼서

나머지 구간을 숙제로 남겨놓게 됐는데,

이번 추석 연휴에 그 숙제를 해내고 말았다.

숙제를 마치고 나니 기쁜 마음에 어깨춤이 절로 나네~~

 

- 산티아고는 멀잖아~ 가까운 맛에 걸어보는 운탄고도

 

산티아고는 멀잖아~ 가까운 맛에 걸어보는 운탄고도

친구넘이 산티아고 순례길에 대한 환상에 푹 빠져있어서, 산티아고는 머니깐 가까운 운탄고도 먼저 걸어보라고 추천했더니 등산은 싫다네? 산꾼들은 임도길 지루해서 안 가거든! 여긴 너처럼 등산 싫어해도 원 없..

onrainbow.tistory.com

운탄고도 종주기가 산티아고 순례길 환상(?)에 푹 빠져있는 친구넘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그전에 니 체력으론 운탄고도 당일 종주는 무리 겠더라~

 

 

 

지난번 중도하차를 나름 분석하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

이번엔 홀로 이동하는 것을 고려하여

이른 일출 보다는 보름달이 오래 떠있는 날을

천문우주지식정보 사이트 자료를 참고해 추석 연휴가 적기라는 판단으로 추진.

 

조상님이 도우사 보름달이 길동무 해주었고,

구름도 적당히 둥둥 떠다녀 걷기 딱 좋은 날이었다.

 

 

출발은 대체로 순조로왔다.

추석이라 보름달도 밝았고,

서울과 달리 나뭇가지가 바람에 꺾여 떨어진 태풍 링링 피해도 거의 없었고,

또한 지난번과 달리 수풀속 짐승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임도에서 토끼와 자주 마주치고 그중 어떤 놈은 내게로 돌진해 기겁하긴 했지만.

 

만항재를 출발해 조금 걷다 보면 자연히 걱정이 든다.

계속 내리막이네??

이럼 안 되는데...

왜?

내려온 만큼 올라야 되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내리막,

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오르막.

 

밤중이라 거리를 가늠하기 어렵다 보니 조바심이 나게 마련인데

간단히 정리하면...

만항재에서 혜선사 갈림길 까지는 내리막,

혜선사 갈림길에서 리조트 갈림길 까지는 오르막

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면 된다.

다행히 경사는 완만하다.

 

깜깜한 밤길을 보름달을 동무 삼아 걷다 보니

어느덧 여명이 밝아온다.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 여명이 밝기 전엔 자리 피고 먹지도 않고

만항재에서 약 2시간20분 8.5km를 걸어왔다.

보온병에 담아온 따뜻한 물로 커피 한 잔을 마시니

이제야 긴 밤을 무사히 걸어왔다는 안도감~

 

참고로 여긴 강원랜드 카지노 빼면 진짜 시골이다.

이런 곳에서 멧돼지 안 튀어나올 것 같아??

멧돼지와 마주춰 본 경험상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멧돼지는 대적 할 수 있는 대상이 절대 아니다.

때문에 걱정을 아니 할 수가 없다.

그런데 무사히 날이 밝았으니

조상님 감사합니다~

 

 

대충 끼니를 때우고 또 걷는다.

이젠 햇살을 등에 지고 또 걷는다.

보통 산길을 이른 시간에 걷게 되면 얼굴에 거미줄 걸리는 게 장난 아닌데

여긴 임도가 넓어서 거미줄 걱정은 덜었다.

 

 

날이 밝으니 자연 경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뭔 실수를 했는지 스마트폰이 조작불능 상태?

사진도 GPS 기록도 완전 먹통이 된 것을 모르고 걷다가

설마설마 이것만을 피해야 하는 상황과 맞닿게 된다.

 

뭔데?

멧돼지!

 

1177갱을 50m 앞에 뒤고 살짝 모퉁이를 도는데 길에 뭔가가 있다.

처음엔 토낀가 했다.

그런데 다리가 왜 이리 길어?

다시보니 멧돼지 새끼 세 마리.

모퉁이 나뭇가지에 걸려 더 있는지는 안 보인다.

 

이야 사진 찍어야지!

어랏 스마트폰 먹통?

 

여기서 새끼라고 만만히 보면 안 되는 게

새끼 주위엔 어미가 있기 마련...

조금씩 머릿속이 새하얘 지려는 순간

예전에 멧돼지 마주친 이후로 최대의 방어 수단으로 개발해온

헛기침 발사!

 

이거 별거 아닌 거 같지만

아직 나를 눈치 못 챈 녀석들이라

이 헛기침 하나 만으로 동작 그만 상태가 되었다.

그리고 연이어 두 번째 헛기침 발사!

멧돼지 새끼들 줄행랑~

 

그녀석들이 머물던 자리를 지나오는 순간

뒤돌아볼까 말까?

돌아봤는데 어미가 있으면?

 

1177갱에 도착하니 왠 파리가 이리 많아?

혹시 멧돼지 아지트 인가?

 

 

오싹한 경험을 뒤로하고 조금 후 도롱이 쉼터가 나타나고 화절령에 도착.

화절령엔 벌목 때 쓰이는 트럭(?)이 홀로 방치되어 있다.

이쯤에서 컵라면 먹고 있는데 SUV 차량 두 대 지나감.

아 18 신세 처량해 보이네...

코펠 버너 갖고 와서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걸 그랬나?

이게 둘 이상이면 짐을 나눠 들고 갖고 올만한데

홀로 40km를 걸을라니 아무리 맛 있어도 부담 백배.

 

참고로 쉬려면 도롱이 쉼터에서 쉬길 권한다.

화절령에도 단출한 쉼터가 있는데 주위가 별로라 권하고 싶지 않다.

 

 

만항재~화절령 까지를 1구간(약 15km)이라고 한다면

이제 1구간을 마치고 나머지 화절령~예미역 구간을 걷기 위해 출발~

 

나중 얘기지만 새비재에서 예미역 까지가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래서

화절령~새비재 까지를 2구간 약 16km

새비재~예미역 까지를 3구간 약 9km

으로 설정하는 게 좋을 듯.

 

 

이후 경치 보며, 숲길 보며, 참치캔 따먹으며 한참을 또 걷는다.

그런데 여기도 내리막 장난 아닌 게,

경사는 완만하나 1시간을 넘게 내리 걸으니 무릎이 피곤해진다.

 

이쯤에서 5월에 구입한 캠프라인 애니스톰 델타 얘기를 안 할 수 없겠다.

이 등산화는 어찌된 영문인지 신을 때마다 만족도가 떨어진다.

 

국민 등산화라는 애칭을 갖고 있는 만큼

바위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잘 붙는 것은 큰 장점이다.

 

그러나 의외의 가장 큰 단점,

걷다 보면 흙모래, 나뭇잎이 등산화 안에 한가득이다.

살살 조심히 걸어도 어느 순간 한가득.

물론 '한가득'이란 과정된 표현이 맞다.

그러나 이것 처럼 내 심정을 잘 표현할 방법이 없다.

발바닥이 불편해 쉴 때마다 등산화 뒤집어 흙 털어내는 게 일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산을 다니며 등산화 안에 들어온 흙모래를 다 모아도

애니스톰 구입 후 4개월 동안 쌓인 흙모래의 반에 반도 안 될 거다.

어느 순간 옥션에서 발목토시를 알아보는 내 모습...

이걸 알았다면 다른 거 구입했을 정도로 큰 단점이다.

 

그리고 중등산화에 걸맞지 않게 중창이 말랑하다.

명색이 중등산화인데 10km 쯤 걷다 보면 발바닥이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이번엔 거리가 거리인 만큼 너덜지대도 아닌 잔돌부리에도 발바닥이 아파온다.

집에와서 확인하니 물집이 부풀어 오른 안쓰러운 내 발바닥이여.

 

바위가 아닌 걷기 위주 산행에는 적합하지 않은 등산화라 생각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꾸는 친구넘에겐 절대로 추천하지 않을 거다.

 

 

다시 운탄고도로 돌아와서...

전망이 점점 좋아진다.

바위산이 아닌 흙산임에도 구비구비 모퉁이를 돌 때마다 경치가 좋다.

곳곳에 벌목 자리가 있지만 경치는 좋다.

 

 

이 길을 구름 없는 날 걸었다면 아마도 타 죽지 않았을까?

물을 4L 준비해 갔고 실제로는 2L 정도밖에 마시지 않았다.

이는 앞서도 말했지만 구름 있는, 걷기에 매우 좋은 날씨였기에 가능했다.

다시말해 날씨 잘 못 만나면 고난의 행군이 넘에 얘기가 아닐 수 있다는 거다.

 

참고로 내 준비물은 기본적인 등산용품 외에 보조배터리, 우의

그리고 식수 및 빵, 떡, 컵라면, 참치캔, 껌 정도.

그래서 배낭 무게는 10kg .

 

 

마지막 오르막을 걷다 보면 마주치게 되는 이정표.

새비재 까지 겨우 500m 남았다는데

피곤이 싸이고 싸여 발이 엄청 무겁다.

 

 

새비재~예미역 구간은 약 9km인데

스스로 많이 지쳐있다고 느낀다면 타임캡슐공원(엽기소나무) 쯤에서

택시를 부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택시 부르는 방법 모를까 봐는 아니고, 굳이 말하는 이유는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가파른 경사를 내려 걷고 또 기차역 까지 걷는 게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기 때문에 하는 얘기다.

 

아래 사진은 이곳 밭의 경사도를 가늠해 볼 수 있게

스마트폰을 수평으로 놓고 찍은 사진이다.

대충 기울기가 느껴지나?

이곳엔 평지란 없다.

밭에 흙이 비에 쓸려 떠내려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다.

 

사진 저 아래 살짝 보이는 도로 나올 때 까지 이런 길을 걸어야 한다.

새비재에서 도로 까지 약 7km를 내려오면서 두 번 쉬었다.

 

그래도 끝까지 걷고자 한다면

새비재 5.2km 이정표 다음 나오는 용운사 갈림길에서 작은 길로 빠지면 된다.

(앞서 보여준 구글 지도에 사진도 첨부했으니 참고하길.)

 

 

두위봉 갈림길 지나서 자전거 타고 온 일행과 마주치게 됐는데

어디서 온 거냐고 묻기에 만항재에서 왔다고 하니 놀라며

언제 출발했냐고 묻기에 새벽 3시 조금 넘어서 출발했다고 하니

더 놀라는 눈치다.

그래서 언제 출발했냐고 물어보니 아침 8시에 출발했다고 하니

7시간40분 가량 걸었던 길을 자전거로 2시간50분 걸렸다는 계산이 된다.

이야! 자전거 재밌겠다~

 

내리막 구간이 워낙 길어서 산악용 자전거와 체력이 된다면

진짜 타보고 싶다.

마침 예미역 근처에 예미MTB마을 이라고 숙박 시설도 새로 생겼던데.

 

그런데 예미역 주변은 역시나 시골이더라...

 

 

만항재에서 예미역 까지를 대충 정리해 봤다.

애초에는 산티아고 순례길 환상(?)에 빠져 있는 친구넘과 함께 무박치기를 예상했으나

다녀온 경험상 둘레길 다니는 체력으로는 무박은커녕 1박2일도 힘들어 보인다.

산티아고 대체제로 운탄고도 보단 지리산 둘레길이 좀더 적절하겠다.

 

또한 날씨에 산행의 승패(?)가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운탄고도는 중간에 식수를 보충 할 곳이 없기에

마실 물을 온전히 갖고 이동해야 하는데 더위나 뙤약볕을 만난다면

도중에 탈출하는 게 상책이다.

이를 무시하고 도전했다간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저절로 생기게 될 것이다.

 

40km를 한 번에 걷기는 처음인데 확실히 힘든 거리였다.

지리산을 무박으로 종주하는 산꾼들이 더욱더 대단해 보인다.

 

사족으로...

등산어플 산길샘(나들이)이 가볍고, 오프라인 지도도 지원해 잘 쓰고는 있는데

GPS 신호 한 번 놓치면 다시 신호 잡는데 오래 걸리고,

해발 고도가 실제와 약 10m 정도의 오차가 있다.

이것만 해결되면 참 좋겠다.

 

참고로 운탄고도 중간중간 이동통신(SKT사용) 음영 지역이 있다.

자전거 타는 이들은 휙~하고 빠르게 지나쳐서 별 의미 없겠지만

뚜벅이들에겐 온라인 지도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지역이다.

더불어 라디오 난청 구간도 많다.

 

운탄고도

만항재 ~ 예미역

약 40km

약 13시간

고한역->만항재 택시비 16,xxx원

 

Track201909140309운탄고도종주.gpx
0.54MB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