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타고
한여름, 한겨울 걸어서 노동당사까지 본문
지난여름 포천까지 걸어가며 더위에 혼쭐난 나머지 구간을 걷기로 했다.
한겨울이지만 다행히 춥지 않은 날씨에 노동당사까지 걸어갈 수 있었다.
이번에도 구간을 나눠 대중교통을 이용해
상계역에서 노동당사까지 약 100km를 걸어
한반도 지도 위에 내 발로 걸은 짧지만 또 하나의 선을 만들게 됐다.
상계역 → 진접역 → 포천터미널 → 운천 → 노동당사
재작년 겨울 백마고지를 가면서 노동당사를 들렸으나 공사 중인 관계로 볼 수가 없었기에
이번 여정의 끝은 노동당사로 정했다.
그리고 보고 말았다.
처참한 역사의 현장을.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기에 더운 여름보다는 쌀쌀한 겨울이 좀 낫긴 하지만
땀이 식으면 이게 체온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에
이래도 저래도 더울 때가 좀 나으려나?
반년만에 포천에 도착하니 서울 보다 좀 더 추운 느낌이다.
인터넷에 보면 지방자치단체 또는 관공서, 사회단체에서 만든 다양한 길이 있는데,
이번 걷는 길에도 무슨 표지기가 매달려 있어서 살펴보니 경흥길이라 한다.
좀 더 올라가면 평화의길도 나온다.
아쉬운 것은 여러 길에서 공통되게 느끼는 것으로
표지기, 이정표 외에 걷는 이들에게 도움 될 만한 것은 거의 없다는 거다.
쉼터도, 화장실도.
짧은 다리를 하나 건너는데 강바닥에서 뭔가가 움직이네?
눈을 한쪽으로 치우고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나 어렸을 때는 한겨울이면 동네 논바닥에 물을 가둬 빙판을 만들고
유료로 스케이트 또는 썰매를 탈 수 있었고,
날이 풀려 빙판이 녹아 사라질 때쯤에는 뗏목처럼 올라타다 미끄러져 물에 빠져 혼나던...
그때는 탈수기가 없던 때라 빨랫줄에 널어놓은 빨래에 고드름이 매달리곤 했다.
포천시 드론 배송 서비스?
오~호~
정말 드론으로 배송을 하는 건가 보다.
운천을 향해 걷는 중에 번쩍번쩍 빛나는 사원 비슷한 것이 보였다.
도로 분리대가 가로막아 건너편으로 가 볼 수는 없었지만
멀리서 보니 타이랜드 참전기념비란 글씨가 보인다.
나무위키에 따르면 한국전쟁 때 태국은 2,274명의 전투병력을 파병한 것으로 나온다.
산정호수 또는 억새로 이름난 명성산을 가려면 거쳤던 운천.
예전엔 외출 나온 군인들이 많이 보였던 기억인데 이제는 썰렁하다.
지방 도시는 결국 소멸하는가?
불암산에 올라 신년일출을 볼까 하다가 남은 구간을 마저 걷는다.
오늘은 철원평야를 가로지를 예정이다.
도로를 따라 한참을 걸어 도착한 철원.
오줌 마려워 혼났다.
애초 계획보다 일찍 버스로 이동했기에
철원에 도착한 시간이 예상보다 1시간 일렀다.
때문에 먼저 검색한 식당에서 돈가스 먹으려고 했는데 이 계획도 어긋나고.
급하게 영업 중인 식당을 검색해 찾아간 곳이 콩나물 국밥집.
내가 좋아하지 않는 콩나물과 국밥,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가게라니.
나름 유명한 식당이었지만 맛은 소금물에 콩나물?
지난가을 청소에서 먹었던 소금물에 간장 풀은 짬뽕의 데자뷔다.
이로운 양 합격을 축하합니다~
철원에서 바로 노동당사로 갈 수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승일교를 가보고 싶었다.
거진 20년 만에 올라선 다리에서 강바닥을 내려다보니 여전히 아찔하다.
전망대에서 한탄강을 내려보니 강가에 길이 나있다.
강 옆을 걷는 것도 나름 기억에 남겠군.
이제는 멀리 금학산을 바라보며 철원 평야를 가로질러 걷는다.
날이 살짝 흐려 금학산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아 조금 아쉽다.
걷는 중간에 잠깐 쉬는데 처음엔 바람 소리로만 생각했는데
뉴스에 종종 나오는 기괴한 소리의 북한 대남 방송으로 여겨진다.
여기서 이 정도 소음이면 민통선 내에 거주하는 주민들 많이 피곤하겠다.
재작년에는 두루미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몇 번 못 봤다.
그렇지만 진흑에 찍힌 두루미의 것으로 여겨지는 발자국을 찾았는데 상당히 크다.
발자국 앞뒤 끝에 맞춰 손바닥으로 재어 보니 대략 11cm 가량.
보폭도 거의 사람만 할 듯.
1시간 반 이상을 걸어 철원 평야를 가로지른 후 도착한 노동당사.
짠 하다.
다시금 생각한다.
전쟁은 미친 짓이다.
참고로 서울로 돌아올 때 대중교통은
노동당사에서 신탄리역 가는 13번 버스를 탔고
신탄리역에서 소요산역 가는 39-2번 버스가 바로 도착해 이를 타고
소요산역에서 전철을 탔다.
39-2번 버스는 중간에 연천역을 거치는데
연천역에서 출발하는 열차가 한 시간에 한 대 꼴이라서
여차하면 한 시간 대기할 수 있기에
바로 소요산역으로 이동해 귀경했다.
아래는 도봉산역환승센터에서 출발해 포천, 운천 거쳐 산정호수로 가는
1386번 버스 시간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