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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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시계방향으로 지리산 둘레길 따라 인월에서 먹점까지

OnRainbow 2013. 9. 12. 21:08
친구넘이 제주도 올레길 얘기를 꺼내 그쪽을 고려하다 일정이 틀어지는 바람에
방향을 급선회하여 홀로 지리산 둘레길을 가기로 결정.

그런데 어째 산에 오르는 것 보다 짐 싸는 게 더 어수선하다.
일정이 길고 지리산 주위니 비 맞을 게 뻔하기에 우의에 우산도 필요하고,
중간 배낭이라 코펠, 버너는 포기했지만 중간중간 커피는 먹어야 겠기에 보온병 짚어넣고,
환절기라 반바지, 반팔, 긴바지, 긴팔 모두 챙겨야 하고,
밤엔 추울게 뻔하니 두꺼운 츄리닝 챙기고,
혹시 모르니 구급약에 압박붕대, 헤드랜턴 챙기고,
이래저래 짐을 꾸리고 무게를 재보니 약 8kg.
엥?

어쨌든~
출발 하자고!!!


▶ 1일차

동서울터미널에서 첫차 타고 인월에 도착 후
먼저 지리산 둘레길 안내센터를 찾아 간단히 몇가지 물어보고 지도 구입.

그런데 지도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방위가 없고 개념도 형식이고 거리도 기재되어 있지 않고 지도마다 표기방식도 다르는 등
이 지도만 봐서는 이동중 현위치 파악이 힘들었다.
(참고로 둘레길 홈페이지와 올라온 PDF 지도와 같으니 굳이 구입하지 않아도 됨)

보통은 시계방향으로 돈다는데 난 반시계방향 검정화살표 방향으로 돌기로~

구룡치 오르느라 땀 좀 흘렸지만 대체로 평이한 구간이라 인월-운봉-주천 까지 이동.














▶ 2일차

밤재 넘어가기도 지루했지만 넘고나선 수풀을 뚫고 가니 반바지 괜히 챙겨온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개척마을에서 현천마을까지 꾸불꾸불 이어진 길이 마을을 잇는 길이라기 보다는
길을 위한 길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아 재미 없었달까...

구리재 못 미쳐서 잠시 맨발로 쉬다가 돌뿌리를 잘못 밟았는지 입에서 악! 소리 나옴.
이후 쩔뚝쩔뚝...
(서울 올라와서 병원에 가니 다행히 뼈에는 이상 없다는데 아직도 쩔뚝쩔뚝)

해 떨어질 시간이 다되어가는데 난동에서 방광까지의 길은 수풀 속을 오르락내리락.
늦은 시간이라 중간에서 걸린 민박집 플래카드로 연락해 하루 묵었는데 최악의 민박집.

주천-산동-방광은 고개를 두 개나 넘는 강행군???










▶ 3일차

방광에서 오미까지는 평이한 편.
오미마을에 한옥민박이 여럿 있던데 식당에서 물어보니 최저 7만원 선이란다.
마을 쉼터에서 쉬고 있던 할머니랑 잠깐 수다를 떨었는데 며칠 전까지 청량리 사셨다며
서울 사람 만났다고 무척 좋아하심~

오미에서 송정 구간은 꽤 힘든 구간.
의승재라는 고개를 넘는데...
아예 능선으로 올라붙던지 그것도 아니고 3부능선에서 5부능선 사이로만 돌아돌아 가니
전망도 못 보고 힘은 힘대로 들고 시간은 시간대로 들고.
막판엔 입에서 단내날지경...
이쯤되니 지리산 종주가 더 쉬울 것만 같다.

어쨌든 여전히 아픈 발을 이끌고 방광-오미-송정 도착.














▶ 4일차

아침 먹으러 주인집으로 가려고 방문을 여니...
비 온다.

사람 마음이 간사해서...
도중에 내리면 비를 맞아도 끝까지 가지만, 시작도 전에 내리니 의욕 상실.
점심을 먹고 나서도 비는 그칠 생각을 않는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책 읽으며 하루 완전히 농땡이...
비 와서 하루 더 쉬고 간 둘레꾼도 있냐고 민박집에 물어보니 내가 처음이란다. ㅋㅋ

압박붕대로 감싸논 발은 여전히 쩔뚝쩔뚝.




▶ 5일차

다행히 비는 그쳤지만 수풀과 흙이 물을 흠뻑 먹고 있는 상태라
등산화 및 등산복은 덩달아 만신창이가 되고...

그럼에도 아주 기대되는 구간이 날 기다리고 있다.
몇몇 선지자의 글을 보니 형제봉 임도 삼거리 장난 아니라고 하기에...

OruxMaps로 확인하기론 이날 최고 고도는 약 810m.
이정도면 북한산에 버금가는 높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힘들었던 것은
오르는 것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중촌마을 이후 진격의 모기떼!!!
서서 잠깐 쉬는 사이에도 모기들이 달라 붙으니 숨 한 번 제대로 쉬지를 못하고
쭉~ 올라야만 했다.

그리고 큰 문제 발생!!!
예상치도 못했던...
사타구니가 쓸려서 아픔이 밀려오기 시작.
아퍼~아퍼~

그리고 큰 문제 또 발생!!!
원부춘마을은 구간 기점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슈퍼 및 식당이 없다는 것.
더불어 펜션촌이라 통상의 민박집이 또 없다는 것.
결국 사정해서 펜션에서 민박 가격에 조금 보태서
그리고 식은밥에 라면 얻어먹는 것으로...
그래도 감사할 따름~

송정-가탄-원부춘을 하루에 이동하는 것은 조금 고려할 부분이 많아 보이고
특히 원부춘에서의 숙식은 대안이 요구됨.
















▶ 6일차

운명의 날!!!

원부춘을 출발해 능선 하나 넘고 대축마을에 도착.
이때까지 먹은 건 모닝커피가 전부.

대축에 도착하자마자 조그마한 슈퍼에 들러 구름과자 사며 식당을 물어보니 없단다.
최참판댁 주위에는 있을거란다.
오면서 보니 거리가 1.7km 이더구만 빽 할 수도 없고...
혹시 식은밥이라도 없냐고 물으니 돌아온 대답이 가관이다.
식은밥은 커녕 김치도 없단다.
헐...

사정은 모르겠지만 김치도 없다니 이리 야박할 수가.
기분이 상하니 더이상 말 꺼내기도 귀찮다.
작은 언덕 하나 오르고 조난 때나 먹을 생각으로 가져온 참치캔에 양갱이로 때움.

배고픈 건 임시로 채웠는데...
또다시 아픔이 밀려온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많이~~~
이리저리 걷는 식을 바꿔봤지만 사타구니 쓸린 건 역시나 답이 없나보다 생각하며
먹점재 지나 먹점마을에 도착.

겨우 머릿속이 비워오기 시작했나 싶었는데...
아픔이 너무 커서 아쉽지만 결국 탈출을 선택할 수밖엔...
이제 내려가면 남은 구간 언제 밟을 수 있을려나...

멍 때리며 쉼터에 앉아 구름과자를 먹고 있는데
이때 홀연히 나타난 할머니 한 분.
옆자리에 앉으시기에 간단히 얘기 나누다가 밥을 아직 못 먹었다는 소리에
따라오란다.
할머니도 밭일 마치고 점심 먹으러가는 참이라며.

그렇게 예상치도 않게 할머니 집에서 점심에 커피 한 잔.
한 시간이 넘도록 할머니와 수다 떨다 보니 성씨가 같은 종친이라는 것 까지 알게 되고.
하산하려고 일어서니 창고에서 PET병 하나를 들고오시며 매실 액기스라며 가져가란다.
배낭에 들어갈 때가 없어서 마음만 감사히 받았다.
다음에 갈 기회가 생기면 할머니들이 좋아할 과자라도 들고가야 겠다.

먹점마을에서 큰 길까지 할머니 걸음으로 30분이라던데 50분 걸렸다.
진짜 아퍼~

압박붕대 싸메고 여기까지 왔건만 예상치도 못한 아픔 때문에
원부춘-대축-먹점을 끝으로 아쉽게 일정을 마치다니...

하동에서 막차 타고 남부터미널에 도착하니 23시10분.
참고로 진주를 거쳐가나 했는데 화개, 구례를 거침.












▶ 기타

인원 : 홀로
일정 : 우천 포함 6일
경비 : 교통비 및 숙식 포함 약 290,000원
이동거리 : 약 117km
이동시간 : 휴식, 식사 포함 약 47시간
이동속도 : 약 2.5km/h
첨부 : 인월-운봉-주천-산동-방광-오미-송정-가탄-원부춘-대축-먹점마을 kml 파일
기타 : 외산 구름과자 못 구함. 디스와일드도 못 구함.
       주천 이후론 하루에 둘레꾼 한둘 정도 마주침. 하루에 마을주민 대여섯 보기 힘듦.
       트레일 코스 임에도 불구하고 야영장도 없고 샘도 하나 없음.
       모든 마을에 슈퍼, 식당, 민박이 있는 게 아님.
       한가로운 전원풍경 떠올리며 갔다간 큰 코 다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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