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타고
웅천역에서 서천역으로 걷는데 11월에 더위라니 본문
아래로 내려갈수록 기차 도착 시간이 늦어지니 해 지기 전에 걷기 일정을 마치기 위해
전보다 한 시간 일찍 출발하는 기차를 타려고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한다.
창동역까지는 버스를 타고 이동해 용산역 가는 첫 차를 탔는데
토요일임에도 사람이 많아 서서 갈 줄이야...
참고로 창동역 근처 김밥 가게가 새벽 일찍 영업을 했다.
웅천역에서 서천역까지 가는 도중에 음식점도 편의점도 없기에
점심으로 이것저것 먹을 것을 준비했는데 이왕이면 김밥까지 한 줄 사서 전철에 오른다.
자 이제 지난 종착점 웅천역에서 이어서 출발~
의외로 차가 다주 다니는 길을 벗어나 이제 본격적인 시골길을 걷기 위해
당당히 무단횡단하는 나를 인증해 주고~
보령시 유일의 독입운동 마을 주야리를 지나는 길에
멀리서 보기엔 저수지에 철새가 내려앉았나 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연잎이었다.
그리고 저수지 주위로 낚시꾼이 설치한 것으로 보이는 텐트가 제법 많았다.
안에는 난로도 있네!
여기서 밤새 낚시를 한 건가 보다.
이쯤에서 밥을 먹어야 하는데 자리 잡을 곳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좀 더 걷는데 우연히 눈길을 끈 계단.
계단을 밟고 올라가니 어느 집안의 잘 관리된 가족묘가 있고 바로 옆에 돌 식탁까지.
이 호사스러운 식탁을 그냥 지나치면 안 될 것만 같아서
여기서 준비해 간 도시락을 먹자고~
참고로 부모님이 연로하기에 일단은 알아는 보자는 생각으로
몇 년 전 동두천에 있는 공원묘지에 분골함을 안치할 평장을 문의하니
1,300을 넘게 부르며 "나중엔 더 올라요" 하는데
그 금액이면 썩히는 시골 땅에 모시고 생전에 맛난 거 사 먹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집안은 잘 준비한 모양새다.
부럽네.
덕분에 잘 쉬었다 갑니다.
서천군으로 들어서며 고개 아닌 고개가 나타나는데
GPX 상으로는 해발 120m 조금 넘었다.
높은 건 아니기에 힘든 건 없지만 왜 이리 더워!!
기상 이변이냐 기후 변화냐?
지난주엔 10월에 민소매로 산 오른 것도 처음이었지만
태어나 11월에 더워서 민소매만 입고 걸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더위에 서천읍내 전까지 줄곧 민소매만 입고 걸었다.
고개 아닌 고개를 넘으니 시골집과 전원주택이 몇 채 나타나는데
이 집은 뭔가 낯설다.
지붕은 새거나 마찬가지고 마당은 시멘트로 포장했고 도색도 하얗고 깔끔한데
왜지?
산사태가 있었는지 안방이 사라졌다.
헐...
이렇게 시골길을 걷다 보면 수령이 몇백 년 된 고목과 마주치는 일이 종종 있기에
괜히 궁금증이 생겨서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읽게 됐는데,
주로 수령이 많은 고목을 찾아다니며, 나무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가는 내용으로
나름 재밌게 읽은 적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 마주한 고목.
느티나무고 수령은 300년.
이 성산리 고목은 두 그루 모두 부러진 가지 없이 위풍당당하게 서로 이웃한 것이 보기 좋다.
보호수임을 알리는 표지석에는 풍년에 관한 재밌는 전설이 새겨져 있다.
만추도 지나고 내일모레면 입동인데 아직 수확하지 못한 벼?
경계석을 못 넘고 길을 헤매는 어린 뱀?
도로 안내표지판을 보니 종착점이 얼마 안 남았다.
작은 마을을 지나는데 이곳 가로수가 개성 있다.
가로수 하면 보통은 은행나무고 벚나무인데,
장구리 마을엔 나무껍질이 매끈하게 발가벗겨진 것처럼 보이는
백일홍나무 또는 배롱나무로 좌우 양쪽에 거의 1km 가까이를 심었다.
7월에서 9월까지 꽃이 핀다 하니 이때 와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에 개성 있는 가로수로 떠오르는 곳은 천태산이 있는 영동엔 가로수가 감나무다.
구 시가지는 어떻다?
어디든 썰렁하다.
토요일 오후 4시 조금 넘었는데 서천읍 길가는 썰렁했다.
군 소재지를 가로질러 걷는데 걸어가는 사람 댓 명 봤나?
차는 계속 다니는데 말이다.
무슨 장사를 하든 주차장은 넓고 봐야겠다.
해 질 녘 그림자는 좋아~
난쟁이 똥자루만 한 키가 정말 커지거든.
지난주 잔미산 내려올 때 무릎 옆 통증 때문에 고생한 게 도지진 않을까 걱정했으나
예정대로 해 지기 전에 서천역에 도착하면서 무사히 끝.
이 여정도 이제 한 번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