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타고
일모도원, 서천역에서 군산 비응항으로 걸어가기 본문
서천역에서 이어서 출발.
이번 구간만 걸으면 성환역에서 시작한 걷기의 종착점인 군산 비응항에 도착하게 된다.
이를 위해 사전에 이동 경로와 이동 시간 그리고 기차 시간을 대충 계산하니
비응항에 해 지기 전에 도착하는 게 간당간당하겠고
좀 더 늦으면 깜깜해서야 도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여태껏 걷기를 하면서 해 질 때까지 걸은 적은 딱 한 번 있는데
그리 바라지 않는 상황이었다.
밤잠을 설치고 새벽 3시 반부터 준비하고 3시간 넘게 기차를 타다 보니
초반에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았으나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날씨가 춥지도 덥지도 않고 살짝 서늘한 정도라서
걷기에는 좋았다.
열심히 교각 아래를 지나 경로 따라 바쁘게 걷는데
갑자기 나타난 풀밭? 옥수수밭?
앗 따가와~
나중에 확인하니 허벅지와 종아리에 핏자국이 여럿.
안 그래도 30km 넘게 걸어야 하는 날에 이리로 안내하다니...
조금만 가면 장항읍내.
하늘에 오리 몇 마리가 날아간다.
철새가 날아오는 시기인가 보다 했는데
좀 있으니 엄청난 오리떼가 내 머리 위를 날아가는데 이게 또 장관이네~
지난겨울 철원에서 두루미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소소한 보는 즐거움을 준다.
여유가 있다면 라면 끓여 먹으며 구경하고 싶어진다.
이제 동백대교만 건너면 전북 군산~
다리 아래는 금강? 아니면 서해 바다?
물 반 펄 반.
이 생각은 미쳐 못 했네...
이렇게 수심은 얕은 곳에 항구가 있다니 신기하다.
이 다리를 걷는 사람은 당연히 혼자였고
자전거를 이용하는 사람이 댓 명 지나간다.
군산은 내가 환상을 갖고 있는 도시 중 하나다.
그래서 이번 걷기의 종착점이 충남 장항이 아니라 전북 군산이 된 것이고,
그 환상의 도시에 드디어 도착했다.
이 소소한 감격은 일단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해 지기 전에 비응항에 가야 하니
딴생각 말고 열심히 걸어야 한다.
비응항을 향해 걷는데 여기도 간척한 곳인지 도로며 논이며 쫙쫙 뻗어있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새만금을 옆에 끼고 비응항을 향해 걷는다.
굳이 비응항을 종착점으로 찍은 것은 군산 시내는 다음날 돌아볼 것이기 때문인데,
가는 중간 새만금은 잠깐잠깐만 보일뿐 제대로 볼 수는 없었다.
그리고 거대한 공장이 엄청 많다.
실시간 도로 상황판에는 옥녀교차로에서 비응항까지 3분+5분=8분 걸린다지만
결과적으로 걸어서는 2시간 걸렸다.
약 10km의 정말 지루한 직선구간이었다.
사거리마다 나타나는 신호등.
걷는 박자가 강제로 멈추게 되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 이렇게 신호 대기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요!
일요일 늦은 오후 비응항 방면에서 나오는 차도 많았지만 들어가는 차도 제법 많다.
낙조를 보러 가는 차들인가?
신년일출을 포함해 해돋이를 보려는 시도는 여러 번 했어도
일몰을 보려는 시도는 굳이 해보지 않았는데
과연 낙조를 볼 수 있을까?
일모도원(日暮道遠), 오자서의 심정까지는 아니지만
해는 이미 저물어 가는데 갈 길이 아직도 멀구나...
서천역에서 화장실을 들르지 않았다면 낙조를 봤을까?
오리떼 구경을 하지 않고 지나쳤다면 낙조를 봤을까?
신호등을 지키지 않았다면 낙조를 봤을까?
바쁘게 걸었으나 애석하게도 낙조는 놓치고 말았다.
해가 모습을 감추자 급속도로 주위는 어두워지며 기온도 빠르게 내려간다.
비응항은 생각보다 작은 항구였고
겨우 6시임에도 불 꺼진 점포가 수두룩하며
불 켜진 가로등도 별로 없으니
철 지난 바닷가에 온 느낌이다.
이렇게 철 지난 바닷가에서 여정에 마침표를 찍는다.
대단하진 않았어도 걷는 동안 소소하게 즐거웠다.
점점 더 걷는 매력에 빠져들고 있는 나~
참고로 비응항에서 새만금방조제 따라 산처럼 보이는 가까운 섬까지 거리가 거진 11km가 넘는다.
걸어서 한 3시간 걸릴 거리다.
더는 못 걷는다~
나름 유명해 보이는 은파호수공원 야경을 보려고 근처 모텔을 예약했다.
저수지 다리를 가로지르며 야경을 구경하려는 호기롭던 생각은 조금씩 변해가
피곤한데 내일 보지 뭐~
조명빛이 빨녹파 빛의 3원색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