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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타고
따가운 여름 햇살이 조금씩 힘을 잃어가는 이달 초부터 반백년 살아온 서울을 한 바퀴 돌아볼까 하는데 발바닥에 조금에 문제가 있어 땅끝탑 갈 때처럼 장거리 걷기는 무리겠기에 네 등분으로 구간을 나눠 서울을 한 바퀴 걸어봤다. 서울 지리를 잘 모르는 편이었는데 한 바퀴 돌아보니 강북뿐만 아니라 강남에도 달동네가 많았다. 차로 이동 때는 그런 생각을 가져보지 않았는데 걸어보니 서초동, 도곡동, 대치동 죄다 언덕배기, 산자락 밑이라 길이 기울어져 걷기 불편하다. 물론 압권은 북한산, 관악산 산자락에 있는 동네지만. 올림픽대교를 처음 걸어서 넘었는데 차 타고 지나가며 힐끗 보던 것과는 다르게 올림픽대교의 위용은 위풍당당하니 장군감이었다. 삼전도비 글자는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흐릿하지만 굴종의 역사 또한 역사이니..
문득 생각하니 서울에서 반백 년을 살고 있는데 여주를 걷는 게 아니라 서울을 먼저 걸었어야 하는 느낌. 그래서 대략적으로 30km 정도 걸을 수 있는 서울 종단을 구상해 보니 년 초에 다녀온 경마장이 있는 과천과 자주 가는 동두천을 각각 걸어 경로를 이어봤다. 그런데 상계역이 워낙 강북 끝자락이라 과천까지만 걸어도 서울 종단이 될 듯. 도봉산역 옆에 있는 창포원에는 전차가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 한 상태에서 마주치니 좀 놀랐다. 도로변 걷고 자전거길도 걸어 지행역 근처를 지나는데 철로 주변이 정원처럼 정비가 잘 돼있어서 걷는 기분이 좋아~ 과천에서 상계동으로 거꾸로 올라오는데 남태령도 고개라고 땀 좀 흘렸고, 지하철 창밖으로만 보던 동작대교를 드디어 걸어서 넘었다. 기사식당하면 싸고 맛있는 것도 이젠 ..
소나기 예보가 있어 예매한 기차표를 반환 후 다음날로 다시 예매. 이날도 소나기 예보는 있었지만 그전에 여주역에 도착 가능해 보여서 진행했는데 소나기가 예보보다 일찍 왔지만 다행히 많은 비는 아니었다. 무인역인 일신역 주변은 한마디로 완전 시골이었다. 따라서 한적해서 걷기 좋았다. 주변은 한적해도 다니는 차량은 의외로 좀 있다. 다음 지도를 통해 중간에 마땅한 식당이 없어 보여 도시락을 싸갔는데 꽃밭에 있는 이쁜 정자가 나타나 점심을 먹으려 했으나 참새똥이 너무 많아서 뙤약볕에서 먹게 됐다. 터미네이터 1편 마지막 장면이 연상되는 먹구름이 멀리서 몰려온다. 적어도 여주 시내까지는 도착하지 않을까 했는데 중간에서 비를 맞게 되겠군... 영월루에 올라 남한강을 내려보는데... 떡하니 버티고 있는 고층 건물과..
지난 해남까지 걷기에서 내가 힘들어한 구간은 오르막보다는 직선구간의 둑방길, 자전거길이란 것을 깨달았는데, 이포보 이후부터 약 13km의 강변 자전거길을 걸어야 되는데 조금 걱정이다. 많이 많이 지루할까? 1주일 만에 다시 찾은 여주. 종일 비가 내린 지난주와 달리 매우 상쾌한 날씨로 시원시원한 바람과 맑은 하늘이 기분을 좋게 해 주었다. 한강 이포보까지는 평이한 길로 차 통행량도 적은 편이고, 자전거용 차로가 별도로 있어 걷기 편했다. 더불어 중간에 벚꽃길이 있어 봄에 걸으면 좋을 듯하다. 여주, 이천이 쌀이 유명하기에 쌀밥정식을 먹고 싶었는데 2인이상 주문가능~ 혹시나 해서 직접 물어봐도 1인은 미안하지만 안 된다고. 뭐 업주 마음이지만... 국내 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이런 건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부발역에 도착해 준비하는 사이 예보보다 좀 더 일찍 그리고 좀 더 많이 내린다. 단순하고 무료하지만 그 와중에도 나름 재미가 느껴져서 몇 번에 걸쳐 여주를 걸어보려고 한다. 그 첫번째로 부발에서 여주까지 경로를 잡고 걷는데 비는 계속 내리고 피할 곳은 마땅치 않고 좀 난감한 상황. 싸 온 도시락 어디서 먹나... 식당 가긴 그런데... 다행히 매류마을 정자가 눈에 띄어 감사히 밥 먹고 쉬었다 간다. 여주 땅을 밟아본 것은 소싯적 농활 오고 처음이니 한 30년 됐나. 강산이 세 번 바뀐 것보다 옛날 농활한 마을 이름도 떠오르지 않다니... 날씨가 기대와 달랐지만 크게 비 맞지 않고 걸을 수 있어서 다행인 하루다. 이 와중에 수상 스키라니... 재밌겠다.
영산강 습지를 걷는 중 의자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엄청난 소음이 들리더니 내 머리 위로 뜬금없이 전투기가 바퀴를 내리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고 있다. 평택 못지 않은 소음이었다. 영산강변을 걷는 내내 계속된 전투기 이륙 소음을 듣고 있으니 짜증이 올라온다. 이 소음을 듣고 어떻게 살지? 광주 지역방송에서 본 군 공항 이전에 관한 뉴스가 절실히 와닿는 순간이었다. 개울에 빠져 죽어 있는 고라니. 도로에 누어 죽어 있는 고라니. 수풀에 걸려 죽어 있는 고라니. 이 소음 속에 한낮에 살아 있는 고라니와 마주치다니. 이른 아침 마을을 빠져나가는 중 우연히 마주친 똥개. 검정 비닐봉지를 물고 가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얼음처럼 굳는다. 아마도 저 검정 비닐봉지를 계속 물고 가야하나? 마나?를 생각하는 것처럼. 무..
나는 산을 좋아하는 게 맞다. 530km 원 없이 걸어 땅끝탑에 도착한 것보다 중간에 3개의 산을 오른 게 더 즐거웠으니. 천태산은 지나가는 동혈고개 바로 옆이라 한 번만 짧게 치고 오르면 정상이라 수월했다. 갈재 바로 옆이라 방장산까지 더해 애초에 4개의 산을 오르려 했으나 산 위세에 위축되어 방장산은 통과했는데, 5월15일까지 입산금지 기간이라 오르지 않기를 잘한 듯. 네 발로 기어오른 월출산은 이번 여정에 백미다. 하루 날 잡고 월출산을 오른 것은 백번 잘한 일이었다. 달마산은 땅끝탑에서 역방향으로 남파랑길 따라 오르기엔 주력이 그 정도는 아니라서 시간에 쫓기며 황급히 정상만 찍고 내려와 아쉬움이 많다.
신태인에서 정읍을 향해 걸을 때 쉬었던 88공원. 등나무 꽃이 이쁘게 핀 작은 공원에서 쉬고 있는데 아랫마을에서 전동휠체어를 타고 할머니 한 분이 올라오나 싶더니 뒤따라 올라오는 전동휠체어 탄 또 다른 할머니를 기다리신다. 말씀 들어보니 일주일에 세 번 공원을 청소하신다고. 덕분에 깨끗한 공원에서 잘 쉬었다 갑니다. 뼈대만 앙상해 보이는 나무가 궁금해 물어보니 백일홍이라고 알려주신다. 산과 다르게 걷기는 생각보다 발이 아파 휴식이 많이 많이 필요했다. 산은 체력 조절하며 올라가서 봉우리 찍고 내리막 때 쉬엄쉬엄 내려가면 휴식이 대충 되는데, 걷기는 아픈 발 때문에 쉬엄쉬엄 걸어가기를 할 수가 없고 온전히 멈춰 앉아야만 휴식이 되었다. 그리고 일정 초반에는 쉬고 일어서서 첫 발을 내딛으면 그 쉰 시간만큼의..